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어니스트 헤밍웨이 (문단 편집) === 사생활 === 그는 평생 인생을 격렬하고 폭력적이며, 진취적인 진정한 마초로 살았다. 그는 6피트(183cm)가 넘는 거구였으며 항상 끓어오르는 정열을 주체하지 못해, 사냥, 복싱 등 위험하고 강렬한 스포츠를 즐기고, 싸움도 꽤 잘했다는 등 자신의 강인함을 세상에 자랑하고 다녔다. 하지만 막상 정식 복싱 대결을 붙여주자 [[빤쓰런|슬그머니 도망갔다고 언급한 지인도 있다]]. 1943년에 소설 《[[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]]》가 샘 우드(1883–1949) 감독에 의해 [[영화화]]되었는데, 시사회에서 영화화 수준에 불만을 품고[* 90년 초반에 [[이선영(성우)|이선영]]의 영화음악실에 나온 일화로는 이 영화 여주인공을 맡은 [[잉그리드 버그만]]이 나중에 헤밍웨이를 만나 이 영화보셨냐고 질문했는데 헤밍웨이는 "극장에서 6번 봤지요."라고 대답했다. 버그만이 그만큼 재미있었나요? 라고 하자 "아니요, 보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포기하고 마저 보느라고 다시 보고 그렇게 해서 6번을 본 끝에 겨우 다 봤습니다."라고 말했다고 한다. 그리고 이 영화가 미국에서만 제작비 3.5배가 넘는 가까운 흥행을 거둬들이며 흥행에 성공하자 헤밍웨이는 더 언짢아했다고 한다.] 감독을 주먹으로 패서 코뼈를 부러뜨렸다는[* [[조정래(소설가)|조정래]]의 <황홀한 글감옥>에 소개된 에피소드다. 조정래는 이 일화를 인용하며, “어떤 작품이 영화화되거나 무대에 각색되어 오를 때에 거기에 지나치게 원작자가 개입하면 오히려 그 결과물은 산으로 가버린다”며 자신의 작품에 대한 [[2차 창작]]에 굉장히 관대한 자세를 보인다.] 일화가 있다.[* 심지어 일제 강점기 조선에도 "헤밍웨이가 사람 팼다"는 기사가 [[동아일보]]에 실린 적이 있는데 피해자는 미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맥스 이스트먼(Max Forrester Eastman, 1883–1969)과 배우(기사에서는 법률가로 나와 있다) 에드워드 채프먼(Edward Chapman, 1901–1977). 둘 다 헤밍웨이의 가슴털을 보고 놀린 게 화근이었다. 이스트먼은 헤밍웨이더러 "자네 가슴털은 진짜 털인가 아니면 붙인 건가?"라고, 채프먼은 "완고한 자식마냥 가슴털 하고는"하고 헤밍웨이의 얼굴을 건드리자 격분해서 턱을 날려버렸다.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39040200209203008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39-04-02&officeId=00020&pageNo=3&printNo=6326&publishType=00020|출처: 동아일보 1939년 4월 2일 기사]]] 자신을 세상에 과시하는 것도 매우 즐겼으며,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유명 연예인과도 같이 자신의 화려한 사생활을 노출하기도 했다. 그래서인지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 인사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고 한다. 자살한 이유들 중 하나가 자신이 늙어 세상의 관심이 멀어지는 걸 견디지 못했던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. 여자를 밝혔으며 사생활도 문란해 여러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, 결혼 중에도 수많은 여자들과 놀아나며 지냈다. 일단 그의 아내들을 정리해 보면 * 엘리자베스 해들리 리처드슨(1891–1979) - 1921–27년까지 결혼.[* 그녀는 1922년에 파리의 기차역에서 헤밍웨이의 원고가 담긴 여행 가방을 분실한 일이 있었다. 이 원고는 90년이 넘도록 행방을 알 수 없어서 이걸 다룬 소설도 여럿 나왔다. 다이앤 길버트 매드슨이 쓰고 국내에서도 정발된 《잃어버린 헤밍웨이를 찾아서》도 이걸 다룬 소설이다.] * 폴린 파이퍼(1895–1951) - 1927–40년. * 마사 겔혼(1908–1998) - 1940–45년.[* 2012년 [[HBO]]에서 이 두 사람을 소재로 한 TV영화를 만들었다. 제목은 《헤밍웨이와 겔혼(Hemingway & Gellhorn)》. [[클라이브 오웬]]이 헤밍웨이를, [[니콜 키드먼]]이 겔혼을 연기했다. 드라마의 평은 썩 좋은 편은 아니다.] * 메리 웰시 헤밍웨이(1908–1986) - 1946–61년까지 가장 오래 같이 살았으며 그의 장례식도 그녀가 치렀다. 위의 셋은 헤밍웨이의 주체할 수 없는 막장 행보에 질렸거나 그와 마찬가지로 막장으로 놀다 떠나갔고, 마지막 아내인 메리가 헤밍웨이와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. 위의 이야기는 사회적 [[페르소나]]를 다룰 때 자주 나오는 사례들 중 하나다. 한 친구의 증언을 인용해보자. 그의 사망 뒤에 친구가 저건 그의 성격이 아니며, '''실제로는 겁쟁이에 울보'''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. 어느 날 호텔에 머물면서 어느 [[영국인]]이 '에릭 블레어'라고 소개하며 인사하기에 퉁명스레 답했더니, 그 사람이 "아, 그리고 [[조지 오웰]]이라고도 합니다."라고 해서 헤밍웨이가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.[[http://navercast.naver.com/worldcelebrity/history/462|##]] 또한, 위 스페인 내전에 반 프랑코 파에 섰던 경력, 그리고 [[쿠바]]의 [[아바나]]에 살았던 것과 관련해서, [[http://m.news.naver.com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3&oid=001&aid=0002762799|그가 실제로 [[소련]]의 스파이로 활동했었다는 설]]이 제기되기도 했다. 이렇다 할 확증은 없는 상황이며, 거꾸로 미국의 정보원이었다는 설까지 제기되어 실은 이중 [[스파이]]가 아니었냐는 의혹도 있었다.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퍼졌을 때, [[모스크바]]와 [[바티칸 시국]]에서도 그의 죽음에 유감을 표명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가 전해진다. 모델이자 영화[[배우]]였던 손녀 마고 헤밍웨이(1954-1996)[* Margot Louise " Margaux " Hemingway. 첫 번째 부인이었던 엘리자베스 해이들리 리처드슨 사이에서 낳은 잭 헤밍웨이(1923-2000)의 딸. 연예계 데뷔전이었던 10대 시절부터 이미 알코올 중독, 우울증 등을 앓았다고 전해지며, 사인도 약물과다 복용으로 인한 자살이었다. 여담이지만, 마고의 막내동생인 마리엘 헤밍웨이(1961-)는 2013년 언니인 마고와 작은 언니 머펫(Muffet)이 아버지 잭과 계모 안젤라에게 갖은 학대와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해 파문이 인 적도 있었다.]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. 상술했듯 말년에 정신질환이 심해져[* 1959년에는 글이 도저히 써지지가 않는다고 호치너(A. E. Hotchner)라는 작가를 불러서 글을 쓰는 데 도움을 받았는데, 호치너가 이때 본 헤밍웨이의 모습을 재현하길 시력 악화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으며 정신 상태도 매우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것이 보였다고 한다.] [[내귀에 도청장치|자신이 도청과 계속되는 감시를 받고 있다고 주장]]했는데,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당시 정말 FBI 측에서 1940년대에 쿠바에 거주한 등의 과거력을 이유로 그의 주소 변동을 예의주시하였고 1950년대에는 [[존 에드거 후버]]가 인정했듯 '''실제로 감시까지 하고 있었다'''는 것이 밝혀졌다. 이는 헤밍웨이 말고도 무수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벌인 짓이었으며 헤밍웨이처럼 노벨문학상을 받은 [[존 스타인벡]]도 감시당해왔으며 그 역시 헤밍웨이처럼 생전에 똑같이 말하고 아예 법무장관에게 전화를 걸며 "후버의 졸개놈들이 날 감시하는 걸 지겹게 보고 있는데 좀 후버 놈에게 그만두라고 말해보시오!"라고 따져들 정도였다. 다만 헤밍웨이가 정말 이 사실을 알아서 피해를 주장한 것인지, 아니면 정신질환 때문에 생긴 편집증인지는 알 길이 없다. 일각에서는 이때 병원에서 [[전기 충격 요법]]을 받고 정신상태가 더 악화되었다는 기록을 들어 "헤밍웨이는 누군가에 의해 폐인으로 전락한 게 아닌가?"라는 [[음모론]]을 제시하기도 한다. 그런데 당시는 [[전두엽 절제술]] 같은 폐인 제조기법을 '''[[의료행위]]'''랍시고 자행하던 시절이라 우울장애에 대한 전기충격요법은 상당히 일반적인 처방이었다. 그의 후손들이 비슷한 질환과 최후를 겪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유전적으로 정신적인 질환에 상당히 취약한 체질이라, 정신질환에 비정상적인 환경까지 합쳐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그를 괴롭게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